마르코폴로(Marco Polo: 1254 - 1324.)는 중세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치아공국 출신 상인입니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인물이 유명한 이유는 유럽인으로써, 서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동아시아(당시 몽골(원)제국.)을 다녀왔고, 그 "기록"(《세계 경의의 서》속칭 《동방견문록》, 이하 "기록")이 남겨졌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기록"은 마르코폴로가 베네치아로 귀국한 후, 제노바공국과의 전쟁 중 포로가 되어 포로생활 중 옥중에서 서술(1298.)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이 것은 이 기록이 당시의 상황을 목격하고 채록한 형태가 아닌, 마르코 자신의 약 20여년의 "기억"을 복원한 것으로써, "정확한 정보"와는 거리가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기록"이 향후 유럽인들의 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호기심을 제공하면서, "신항로 개척"으로 이어진 가치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속칭 "신대륙(아메리카.) 발견" 역시 대양을 "횡단"하여 아시아로 가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시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기록"이 한국의 입장에서 가지는 큰 가치가 있는데, 바로 한국의 영어식 표기인 "KOREA"의 기원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한국의 국호는 그 이전부터 알 이드리시의 《로제트의 책》(1154.), 교황청 및 프랑스왕국의 사절로 몽골제국을 방문한 플라노 드 카르피니(1245.) 및 윌리엄 루브룩(1253.) 수사 등에 의해 유럽 및 아랍세계에 알려졌다고 하지만...
마르코의 "기록"이 다른 기록들과는 다른 특징은, 한국의 "구체적인 위치"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언급되어있으며, 향후 마르코의 "기록"이 신항로 개척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마르코폴로의 "기록"에 언급된 한국의 표기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마르코폴로의 "기록"은 후대에 여러 저술가에 의해 필사된 이유로 그 기록이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 대한 표기 역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서적 『동방견문록』(동서문화사, 채희순 역, 2판4쇄, 2015.)에서 한국의 표기는 "Karli"로 언급되어있으며, 다른 서적에서는 Kaoli 혹은 Caoli라고 표기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마르코의 "기록"의 원본(초판.)에 한국의 표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우선 그런 필사의 과정 역시 한국이 당시 팽창기에 돌입한 유럽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라 봅니다.
참고로, 아래의 발췌부분은 마르코폴로의 "기록"에서 한국의 표기 "Karli"가 등장하는 부분입니다.(당시 고려왕국.) 정확히는 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만주지방의 나얀의 반란(1287.)을 제압하면서 만주 및 그 인근의 국가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정황상 이 시기 고려는 원제국과 강화한지 거의 20여년이 지난 시점으로써, 나얀의 반란을 진압한 쿠빌라이에게 축하사절을 보낸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이 냐얀의 잔당(카다안(哈丹))이 서기 1290년 전후 고려에 침공합니다.
(전략)
이런 경위로 대칸이 승리를 거두자 나얀 휘하의 장병과 주민들은 모두 대칸에 복종하고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다. 그들은 네 지방의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네 지방이란 첫째가 조르챠(여진족), 다음이 칼리(Karli, 고려), 셋째가 바르스콜(Barskal, 말갈), 넷째가 시킨틴진 *5 이다. [1]
(하략)
[1] 마르코폴로 저, 채희순 역, 『동방견문록』(서울:동서문화사, 2015.). p140.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