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회의 교통 통신체계 그리고 산업.(2019.9.24.) 독서록

국가사회를 국외에 전면개방하지 않고 외국의 문물에 대해 경계하는 관념은 대체로 근대 이전 사회에서 매우 흔했던 현상입니다. 그 이유로써,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종교)의 세계관 및 우주관이 대체로 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다는 것 이외에도 당시의 교통과 통신기술이 발달되지 않음으로써, 다른 지역 및 국가, 혹은 다른 대륙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 타 지역에 대한 정보가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풍문과 상상이 가미된 정보가 많았고, 그런 이유로 외부 지역에 대하 공포심이 형성되어 그것에 대한 관심이 소멸하는 상황 역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근대 이전의 사회는 한 개개인이 체류하는 지역 및 사회가 "가장 표준적이고 최상의 선(善)"의 사회이고, 그 외부의 사회는 "후진적이고 악(惡)의 사회"로 인식한 것으로 이것이 발현되었다고 봅니다.

대체로 조선왕국(朝鮮: 1392 - 1897.)의 서기 19세기 이전의 사회는 우선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전근대적"이었다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서기 1860년대 제작된 《대동여지도》를 보면, 그 당시 "봉수체계"가 상세하게 언급되어있는데, 이것은 서기 19세기 중반경까지도 "봉화"(烽火: 불꽃 및 연기를 통한 원거리 통신수단.)이 활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육상교통의 발달이 그 당시까지 미비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역참제"(驛站制)가 당시 조선사회에서 운용되었고, 각 주요 교통로마다(약 30리 간격으로.) "역"(驛)이 존재하였지만, 그것은 대체로 국가기관의 교통 및 통신(서신.) 수단에 국한하였고 그것이 조선사회의 교통과 통신의 활성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조선사회의 특성 중 하나로 "농본"(農本)의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이것은 농업을 국가의 기본산업으로 인식한 것으로써, 대표적인 근대이전 사회의 특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때 농업을 중시해야하는 상황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으나, 이것이 조선의 주민들의 이동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농업의 특성상 대체로 겨울을 제외하고 1년 중 4분의 3의 시간을 농경에 소비해야하는 상황 및 그 농경이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인력에 대다수 의존해야하는 성격으로 말미암아 "농업 이외에는 관심사가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져, 주거지와 생활기반이 고정적인 성격을 띄어 "한 지역에 몇 대를 이어오는" 경우가 형성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것이 교통과 통신의 필요성과 발전이 정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아울러, 이 "농본"의 이데올로기가 교조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면서 공업과 상업의 발전이 제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주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그것이 국가의 기본산업으로 인식되면서 정부의 정책이 농본중심으로 이루어질 경우, 정부의 차원이나 사회전체의 차원에서 공업과 상업의 발전이 저해되는 요건이 충족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업과 상업의 특성이 제품의 자급자족이 아닌 "유통"에 있으므로, 이 공업과 상업의 발전이 교통과 통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서적 『하멜표류기』에서 언급된 서기 17세기 조선의 교통체계 역시 앞서 언급한 조선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멜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사회에 전문적인 여관을 찾을 수 없으며 여행중인 조선의 주민은 각 마을(縣邑.)의 민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중인 높은 신분일 경우 관청 등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이것은 행인(行人)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관습으로 평가할 수 있는 동시에, 당시 조선사회의 교통체계가 전문적인 여관의 보급에 이르르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주막"(酒幕)의 개념이 언급되는데, 여기에서 언급되는 서적 『하멜표류기』(김태진 역, 서해문집.)에서는 "휴게소"라고 번역하고 있으므로 원문의 표현이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것이 조선의 교통체계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언급될 수 있기도 하고 상업의 발전(유통.)의 척도로 평가할 수 있지만, 우선 하멜의 저술에서 이것이 "서울로 가는 큰 길"에 존재하였다는 서술이 있으므로, 최소한 서기 17세기경 조선사회에서 이것이 "보편적인 여행자용 숙박시설"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선사회의 "여행"이라는 개념은 현대의 취미나 여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조직의 업무 및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자, 일부 상인 및 유랑민(승려 등을 포함.) 등에 한정하는 개념으로써, 이것으로 조선사회의 사회변화와 교통체계를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전략)
여행자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여관은 없다. 여행자들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비록 양반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집이든지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자기가 먹을 만큼의 쌀을 내놓는다. 그러면 집주인은 즉시 이것으로 밥을 지어 반찬과 함께 나그네를 대접한다.
(중략)
서울로 가는 큰길에는 고관이든 일반 백성이든 여행자들이 묵어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휴게소(주막집)가 있다.
(하략)

헨드릭 하멜 저, 김태진 역, 2003, 『하멜표류기』(파주:서해문집, 2018). 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