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 하멜은 서기 1653년 8월 15일경 제주도 남단에 표착하여 약 13년간 조선에 체류한 인물입니다. 하멜의 저술인 《하멜 표류기》에서 하멜의 표착지는 대체로 "돗대로 천막을 칠 수 있고", "주민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관청에서 주민의 보고를 통해 1일만에 출동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그 이유는 8월 15일에서 16일에 걸쳐 제주도 남부 해안에 표착하였고, 그곳에서 8월 17일경 2차례에 걸쳐 주민을 목격하였으며, 17일 저녁 100여명의 "무장한 주민"이 하멜 일행의 표착지에 당도하였고, 8월 18일 정오무렵 그 "관병"(官兵)으로 추정되는 "기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군인 1천 - 2천여명이 하멜 일행의 표착지에 당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하멜 일행은 총 64명이고, 표착시 이들이 탑승한 선박은 스페르베르호(De Sperwer)였으며, 이 선박이 제주 해안에서 좌초되면서 36명이 생존하고 나머지 28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멜 일행이 제주로 가는 도중 "대정현"(大靜縣)을 경과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우선 하멜의 표착지가 제주 대정현 관할지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여기에서 하멜 일행의 표착지에 17일 저녁 당도한 "무장한 주민 100명"은 우선 대정현 주민들로 구성된 일련의 "잡색군"(예비군.)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하멜 일행이 제주도 서남부 해안에 표착한 것은 거의 확실시됩니다.
다만 구체적인 표착지에 대한 논쟁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멜상선전시관"이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쪽에 위치한 "용머리해안"에 소재하는데, 아래 링크된 『제주 MBC』의 보도에 의하면, 서귀포시 대정읍 서쪽에 위치한 "신도 2리"를 하멜 표착지로 비정하고 그곳에 하멜 일행이 난파된 스페레베르호의 죽은 28명의 승무원을 위한 "위령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위령비"를 세운 측이 언급한 근거는 서기 1694년경의 제주목사의 기록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조선시대 대정현 지역은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으로 비정할 수 있습니다.
2. "하멜상설전시관"이 소재한 용머리해안과 대정읍간의 직선거리는 약 6km내외이며, "위령비"가 세워진 신도2리에서 대정읍까지는 대체로 9km내외(직선거리)입니다.
4.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당시 대정현의 위치는 용머리해안지역과 인접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당시 대정현의 위치가 현재 대정읍의 위치와 "약간" 달랐을 수 있다고 봅니다.
5. 『하멜표류기』(헨드릭 하멜 저, 김태진 역, 서해문집, 2018.)에 "번역된 기록"에 의하면 하멜은 표착지에서 8월 21일 정오에 대정현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하루밤을 묵었다고하는데, 표착지에서 대정현까지 약 6km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 "6km"는 하멜의 저술을 영역한 것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물론 하멜이 어림으로 거리를 산정한 경우일 가능성이 크므로, 이 기록은 약간 의역을 해야하는 기록이라고 봅니다.(이 경우 용머리해안이 유력해집니다.)
6. 하멜의 저술에 따르면, 하멜 일행은 인적이 빈번하지 않은 곳에 표착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대정현과 가까운 거리에 표착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울러 하멜 표착시기(1653.)와 가까운 시기(1694.) 제주목사의 기록된 표착지는 현재의 신도2리로 추정됩니다.(이 경우 신도2리가 유력해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우선 하멜의 저술에 하멜의 소속선박이었던 스페르베르호가 난파하면서 선내의 물품이 표착지 인근 해역에 침몰한 기록 및 하멜이 죽은 승무원을 찾아 표착지 인근에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일련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그 위치를 규명하는 것이 확실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참조영상: 이 영상은 『제주MBC』 2017년 8월 16일자 방송으로써, 하멜의 표착지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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