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후 하멜 일행의 "위치측정"과 조선정부의 표류자에 대한 조치.(2019.9.4.) 독서록

헨드릭 하멜은 현재까지 알련진 사실에 의하면, 유럽인(비한자문화권)주민 중 조선왕국에 장기체류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인물은 당시 네덜란드공화국의 정책적인 교역로에 의해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중 풍랑으로 제주도에 표착한 경우로써, "의도치 않게" 조선왕국에 체류한 경우로써, 그 기록의 의미는 "유럽인의 시각" 혹은 "제3자의 시각"으로써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제3자의 시각이 언급되는 이유는 조선왕국(제1자) 및 같은 문화권으로써 교류가 빈번했던 인접국(일본 및 중국.)인의 기록(제2자)이 아닌, 비유교한자문화권 및 비동아시아지역의 주민(제3자)의 기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 의해 하멜은 "정확한 정보가 없던 조선왕국"에 체류하면서 "처음 목격하고 체험하는" 상황에 직면한 심리로 인하여 조선왕국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하고 동아시아적 관점(유교 및 사대교린의 관점 등.)이 배제된 관점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네덜란드공화국이 위치한 유럽지역이 그리스도교문화권으로써, 그 관점에 의해 조선왕국을 인식한 배경 역시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그의 표류기 중간중간에 "이교도" 혹은 "이교도의 땅"이란 명칭으로 조선의 주민 및 조선왕국을 표현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유럽의 문물이 세계사의 "근대 이후"의 시기에 기여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하멜의 관점이 조선을 인식하는 근대 이후의 관점과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에서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 직후 제주에 소재한 조선왕국의 지방관(제주목사)의 하멜 일행에 대한 조치 및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 일행의 행동은 당시 조선왕국의 사회특성 및 당시 세계적 차원의 해상 무역을 담당하던 네덜란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하멜표류기》의 특성상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하멜의 시각"으로 조선사회를 인식한 경우로써, 국내의 문헌이나, 중국/일본측의 문헌에서 나타나는 관점과는 다른 제3의 관점으로 조선사회를 평가하고, 또 조선사회의 상황이 《조선왕조실록》등 한국사회에서 저술된 민간 및 정부의 저술에서 나타날 수 있는 조선사회에 대한 프로파간다식 서술(체제긍정.)에 의한 관점을 다른 시각에서 검토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래의 부분은, 하멜 일행(생존한 36명.)이 제주도에 표착 후의 행동 및 제주도민 및 조선정부의 조치 등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세계의 해상교역을 장악했던 네덜란드인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써, 표착 후 일련의 "측정"(천문관측을 통한 위치측정으로 추정.)을 통해 표류한 일행이 퀠파에르츠(Quelpaert: 서적의 켈파르트. 현재 제주도.)에 표착했음을 확인한 하멜 일행 및 당시 일반 표류자를 보호하여 송환하는 방침이 기본방침이었던 조선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하멜 일행이나 하멜 이전에 조선에 표류(1627)하여 정착한 얀 얀스 벨테브레(귀하명 박연(朴淵), Jan Jansz Weltevree: 1595 - ?.)는 조선에 표류한 후 일본행(데지마(出島): 나가사키 소재 네덜란드 무역창구.)을 희망한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선정부의 방침에 의해 조선에 체류하게 됩니다. 이 경우 당시 조선의 대외적 폐쇄성 혹은 조선국왕(효종)의 "북벌"(北伐)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네덜란드인이 체류하게 된 이유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일본측에서 당시 그리스도교도로 의심되는 인물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은 배경에 의한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이 저술에서 하멜 일행을 접견한 제주목사(이원진(李元鎭))가 의식과 편의를 제공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최대한의 보호조치를 하면서, "일본으로 송환될 것"을 언급하였다고 하멜이 기록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1] 물론 하멜 일행의 표류소식으로 인하여 통역 등의 임무를 담당하여 제주에 내려온 벨테브레가 "이곳에 체류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임을 설명하면서 하멜 일행의 희망은 슬픔으로 바뀌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2]

(전략)
오후에 그들 각각이 밧줄을 가지고 우리에게 왔기에 혹 우리를 묶어 죽이려는가 싶어 덜컥 겁이 났는데, 그들은 난파선이 있는 쪽으로 걸어 가서 시끌벅적 떠들면서 쓸 만한 것을 주워 모아 묶었다. 저녁에는 우리에게 쌀밥을 주었다.

그날 오후에 일등항해사는 관측을 하더니만 우리가 북위 33도 32분에 있는 켈파르트(제주도) 섬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3]
(하략)

[1] 헨드릭 하멜 저, 김태진 역, 2003,『하멜표류기』, 초판 14쇄, (파주:서해문집, 2018). p.34.
[2] 같은 서적. p.36.
[3] 같은 서적.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