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 『홍대용의 실학과 18세기 북학사상』의 독서종료에 임하여. 독서록

서기 18세기 조선사회를 구성하고 또한 조선사회의 변화를 모색한 이데올로기는 "실학"(實學) 및 "북학"(北學)으로 정의됩니다. 물론 이 이데올로기가 특정한 "시스템"을 가지고 사상가들의 이데아를 통일한 것 보다는 여러 사대부(지식층)이 조선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개선방향을 구상하면서 "다양한 개선방향"을 언급한 것을 실학으로 범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실학 혹은 북학 이데올로기를 평가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개화사상가의 입장에서 실학 및 북학의 평가.
2. 자본주의맹아론(내재적 발전론.)의 측면에서 실학 및 북학의 평가.
3. "2번"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실학 및 북학의 "한계성"의 언급.)

여기에서 1번의 경우, 서기 19세기 및 20세기 초중반 한국사회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경과하는 시기 독립운동가 및 계몽운동가들이 주창한 관점으로써, "개화"(근대화)가 사회의 절대적 지상과제였던 사회적 배경에서 "사회개혁"을 주장한 실학 및 북학이 큰 평가를 받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일본제국의 식민주의역사학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이에 대한 반성론에서 비롯된 "자학적 역사인식"이 한국사회에 파급된 배경 하 "암울한 한국사의 개혁을 주장한 의미"가 부각되면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진 경우로써 이해할 수 있습니다.

"2번" 및 "3번"의 관점은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식민주의역사학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역사학(내재적 발전론.)이 크게 부상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관점 및 이런 흐름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한 관점(수정주의적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1번"의 관점이 발전하여 "2번"의 관점이 등장하였으며, "3번"을 통해 그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실학 및 북학에 대한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실학 및 북학을 인식하는 관점에 극단적인 "근대성" 혹은 "전근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고 봅니다. 우선 서기 18세기의 조선사회, 더 나아가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사회는 "전쟁"과 "정치체제의 번화"를 통해 중세적 사회가 와해되는 시점으로써, 그런 배경에서 사회를 "재설계"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유럽세계의 팽창으로 인하여 유럽의 문물이 유입되면서 당시 사회의 지식체계가 다원화된 상황이 그대로 이데올로기에 투영된 것으로 이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중세적 요소"와 "탈중세적 요소"(혹은 근대지향적 요소.)가 혼재해있는 상황에서 이를 적절히 절충활용하려 했던 이데올로기가 실학 및 북학이며, 이는 중세 혹은 근대의 의미가 아닌 "제3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런 관점을 한국사의 시대구분에 적용하면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체제의 변화를 기준으로 서기 1392년(조선왕국 건국.)부터 서기 1860년대까지를 "근세"(近世)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회변화"의 관점으로 시대를 구분할 경우 서기 17세기부터 서기 19세기를 "근세"로 규정하는 관점도 타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보다 많은 검토와 연구가 수반되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전략)
그러면 이러한 논란이 배태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조선후기 실학의 구체상이 확립되지 못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이른바 실학자들의 학문.사상이 비단 경세론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이론.역사관.경학관 등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밝혀지고, 그것들의 논리적 연관이 규명되어야 한다.
(하략)

김문용, 『홍대용의 실학과 18세기 북학사상』(서울:예문서원, 2005).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