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주변"인식의 쇠퇴와, "동양-서양"인식의 태동.(2019.8.18.) 독서록

서기 18세기 조선사회에 존재한 특징적인 이데올로기로써 실학(實學)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조선사회에 내/외부의 변화가 그대로 이데올로기에 투영된 측면이 확인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경에 의하여, "실학"은 여러가지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당시 조선사회를 지탱하던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와 성리학이 표방하던 천하관(화이관), 그리고, 당시 중국대륙의 "명-청 교체기"(청제국의 중국 지배.) 및 서기 16세기 이후 동아시아에 알려진 유럽의 가치관이 실학을 구성하고 잇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배경"이 실학의 "동기"인 "사회체제의 변혁"으로 이어진 측면도 추측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청제국의 중국지배로 당시 조선사회에서 "오랑캐"로 인식하던 청제국을 어떤 의미로 파악해야하는지에 대한 다소 복잡한 인식이 존재했다고 보며, 이것 역시 실학의 동기에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실학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는 "북학"(北學)은 이 실학으로 분류되는 여러가지 견해 중에서도 급진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체로 청제국을 방문한 후 청제국의 사회에 내재한 "발달된 문물" 및 "유럽의 가치관"에 자극을 받아 조선사회의 대대적인 개혁을 도모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홍대용 역시 청제국을 답사하고 북학에서 주장하는 "신문물을 도입하여 개혁을 구상"하는 이론과 같은 입장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북학파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서적 『홍대용의 실학과 18세기 북학사상』에는 당시 조선사회의 세계인식이 "화이관"(華夷觀)에 기인한 "중화"(中華)와 "사이"(四夷)의 구별이 아닌 일련의 "동아시아"와 "유럽"으로 구별하는 인식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동아시아에 유입된 유럽의 가치관(천문학, 지리학 등.)에 기인한 것으로 우선 추정할 수 있으며, 이것이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중화사상의 와해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인식에 영향을 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당시 "오랑캐"로 인식하던 "청제국"(淸: 1616 - 1912.)의 중국지배에 대한 북학의 입장은 "오랑캐가 중화화되었으므로, 이를 멸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견해로 이는 "중화"의 개념이 잔존을 의미한다는 서적의 견해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그 이후 적극적인 사회개혁과 중세적 세계관(중화사상)의 수정의 입장이 확인되는만큼, 이 현상은 일련의 인식전환의 "과도기"로 볼 수 있거나, 당시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청제국에 반감에서 비롯된 "소중화"(小中華)의 인식에 대한 상호간 논쟁의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전략)
동석의식의 측면에서는, 종래의 중국과 그 주변으로서의 동국東國의 대비가 설명력을 잃어가고, 이를 대신하여 동양과 서양을 대비하는 동서의식이 싹트코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천문.지리 지식을 통해 가능하였는데, 지구설에 따라 지리적 중앙 개념이 부정되고 서양의 문화.문명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 중화만이 유일한 문화.문명이 아니라는 각성이 일었던 것이다.
(하략)

김문용, 『홍대용의 실학과 18세기 북학사상』(서울:예문서원, 2005).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