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문(金錫文: 1658 - 1735)의 견해의 의의와 과제. 독서록

서기 17세기 및 18세기 초반경 조선사회에서 활동한 인물 중에 김석문(金錫文: 1658 - 1735.)이 있습니다. 이 김석문은 서적 『홍대용의 실학과 18세기 북학사상』에서 홍대용의 우주관에 영향을 준 인물로써 언급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사회에서 "중세적 우주관"에 대한 일련의 "수정주의적 견해"의 출현시점이 서기 17세기경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김석문의 견해가 "특정 학파의 고립된 견해"인지 아니면, 이 현상이 당시 조선사회 지식층의 "인식의 변화"였는지 상세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서기 18세기 전후 실학 및 북학을 지탱한 자연과학적 견해가 조선사회를 지탱한 "중세적 관점"의 재고를 시도하였고, 그것이 19세기 개화사상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래의 문서는 김석문에 대한 『NAVE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개요적 설명으로써, 김석문은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 - 1601.)의 연구결과를 수용하되 "자구자전설"을 티코의 견해에 보강추가함으로써, 김석문의 주장의 독창성이 여기에서 확인된다고 봅니다. 다만 김석문의 견해는 수치적 관찰과 실험, 그리고 계산으로 정의할 수 있는 방법보다는 여러가지 "견해"를 일정한 "관점"에 의해 "절충"하는 형태로 생각되며, 이것은 다음 세대에 "자연과학적 연구방법론"의 과제를 전달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견해에서도 동아시아에서의 일련의 "자연과학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氣)의 개념으로 자연과학적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이것이 유럽의 "에너지"(Energy)의 개념과 유사한 개념으로 정립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최소한 일련의 "역사적 의의"를 가지며, 그이론이 어떻게 진행발전되어왔는지는 추가적인 고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서기 17세기-18세기경의 실학적 자연과학관의 "방법론"이 구체적인 모습 및 그 변천발전과정을 고찰하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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