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홍대용의 실학과 18세기 북학사상』.(김문용, 예문서원, 2005.) 독서록

담헌 홍대용(洪大容: 1731 - 1783.)은 조선왕국 중후기(서기 18세기.) 조선사회에 존재한 실학(實學) 및 북학(北學) 사상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실학"은 조선왕국 중후기 조선 국내 및 국외의 사회상이 투영된 현상으로써, 이를 통해 "사회사"의 측면에서 서기 18세기 전후 조선사를 고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알려진 것과 같이, 서기 18세기 조선사회는 그 이전시기까지 조선사회를 지탱하던 이데올로기와 그 가치관의 "변화"가 모색되던 시기입니다. 이는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한 사회질서의 붕괴 및 당시 명/청제국 및 일본에 도입되기 시작한 유럽사회의 가치관의 도입에 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사회에 등장한 "실학" 및 "북학"은 이러한 배경에서 태동한 이데올로기로써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홍대용 역시 전형적인 서기 18세기 조선사회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써, 일반적으로 "지구지전설"(地球地轉說: 일련의 "지동설"로 이해할 수 있음.) 및 "역외춘추"(域外春秋: 중화적 가치관의 절대성을 부정.)를 언급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의 "실학"은 "경세치용"(經世致用) 및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이데올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체로 전자와 후자의 구분의 기준은 "농업중시"(경세치용), 혹은 "상공업 중시"(이용후생)으로 생각하며, 특히 후자(이용후생)의 경우 당시 청제국(淸: 1616 - 1912.)의 사회상 특히 "상공업의 발전"을 그 모델로 상정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북학"은 "이용후생"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북학의 특성이 청제국을 모방하는 이데올로기로 인식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북학의 일부의 특성"을 언급한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북학(北學)파에 속하는 홍대용은 지구지전설(地球地轉說) 및 역외춘추(域外春秋)의 개념을 언급하는 측면에서,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중세적 관점에 거리를 두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역외춘추"는 이른바 "중화가 이닌 외부의 가치관을 주목"하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청제국을 따르는 것이 아닌", "중세적 관점을 극복"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북학의 관점에서 청제국은 과거의 "천하의 중심으로써 존숭"되었던 관점이 아닌 "문물 도입의 공간"으로 인식되어가는 관점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경우, 일본의 경우처럼 네덜란드와의 직접적 교역을 통해 중화권 외부의 가치관을 "직접 도입"한 경우가 아닌, "청제국을 통한 간접적 도입"이 서기 18세기 조선사회에 존대한 실학 및 북학의 한계로서 언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조선왕국의 대외세계에 대한 관심이 적극적이지 못하였다는 한계와, 당시 팽창기에 돌입한 유럽세계의 조선왕국에 대한 관심의 결여가 복합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조선사회의 사회변화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 한계의 범위 내에서 조선사회가 "변화"의 조짐이 있었고, 이것이 서기 19세기 개화사상가들이 유럽의 가치관을 무리없이 수용하는 "배경"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