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6.25남침전쟁"은 "냉전"(Cold war)이라는 국제적 배경 및 남북한의 정치적 노선에 의해 시작한 전쟁으로써, 그 전쟁이 군사적 목적에 한정되지 않고, 한반도 주민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수반된 전쟁입니다. 여기에 전쟁 초기 남북한 상호전력의 불균형 및 국제연합군,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전쟁양상이 급격히 뒤바뀌면서 전선의 이동이 한반도 전역에 걸쳤고 이로 인하여 남북한 사회 전반에 이 전쟁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반도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대다수는 이 전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았으며, 전쟁상황을 직접 겪은 증언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역사학적 측면에서 전쟁상황을 상세히 복원하는데, 이런 "증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서기 1980년대부터 한국사회에 파급되어 최근, 6.25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은 대개 "아메리카합중국의 대외정책"을 6.25의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는 냉전질서하 아메리카를 절대적인 권력국가이면서 패권국가이고, 그에 대적하는 국가들을 "권력국가에 대항한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관점에서 6.25전쟁중 한국군 혹은 연합군의 과오가 비중있게 언급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식이 과거 대한민국의 정치적 안보적인 이유로 "애국"적 관점이 주로 강조되던 6.25의 인식의 변화를 유도한 측면이 있으나, 이런 수정주의적 인식이 6.25에 대한 또다른 "선입견"으로 적용될 위험성이 또한 공존합니다. 우선 6.25가 "냉전질서"의 영향에 의해 수동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북한정권의 정치적 노선이(국토완정)이 전쟁의 도화선이었던 것은 명백히 알려진 사실로써, 냉전질서 혹은 이데올로기와 별개로 북한정권의 정치적 노선이 전쟁의 원인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서적 『남침유도설 해부』(안천, 교육과학사, 1993.)와 『내가 겪은 6.25』(김찬수, 명문당, 2013.)는 주로 6.25에 대한 "개개인의 증언"이 중심적으로 언급된 서적입니다. 우선 이런 증언들은 서기 1990년대 공산측의 문서가 알려지면서 알려진 6.25전쟁의 원인을 교차검증하면서 동시에 6.25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전쟁발발의 원인 및 한국군 및 연합군의 과오를 강조하는 견해.)에 대한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도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두 서적은 서적이 출간된 시기 및 저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존의 대한민국의 안보주의적 관점에서 6.25를 조명한 서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견해가 우선 "수정주의적 견해"에 대한 비판과 보완의 의미를 가지면서 이 서적에서 인용된 다수의, 혹은 저자의 증언 "자체"는 그 증언의 채록 및 정확성을 고려할 때 일정량의 객관성을 가지며, "전쟁상황 복원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6.25를 직접 겪은 인물들은 많으며, 그 증언이 수록된 서적들은 시중에 다수 나와 있으며, 대표적인 서적으로 역사학자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김성칠, 창작과 비평사.)가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서적은 대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6.25를 평가하는 관점에서 일정부분 거리를 두면서 "6.25 당시 서울지역"을 언급한 "사회사"의 측면에서 이 서적이 가지는 가치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의 상황을 다룬 다른 서적 들 역시 각 지역의 다양한 관점을 조명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아울러 6.25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안보주의적) 관점" 및 "수정주의적 관점"을 보완 및 극복할 수 있는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전략)
정치가들이 사랑의 마음과 자세로 정치를 잘한다면 국민들이 구태여 보따리 싸들고 정처 없이 여기저기 피난길에 헤매지도 않을 것이고 영문도 모르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되지도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잘못은 정치가들이 다 저질러 놓고 죽기는 애꿏게 국민들 몫이 된다는 바로 이 사실을 위정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될 것이다.
김일성으로부터 자행된 불법남침이 햇수로 3년의 전쟁 기간 동안에 이렇게 세계 전사에서 한 국가 안에서 가장 커다란 희생과 후유증을 남기게 되어 5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땅에는 아직도 슬픔이 도처에 스며들어 있어 그 한이 태산같이 쌓여 있다. [1]
(하략)
[1] 김찬수, 『내가 겪은 6.25』(서울:명문당, 2013). p.427.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