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18세기의 역사인식(뿌리)과 서기20세기의 "민족주의사관"(열매).(2019.4.19.) 독서록

한국사회는 서기 19세기 후반경, 구체적으로 "개항"한 서기 1987년경부터 "전혀 다른 성격의" 가치관이 급속하게 유입됩니다. 이른바 "근대사회의 가치관"이 그 유입된 가치관으로써, 여기에는 "민족주의"(nationalism)가 대표적인 가치관 중 하나입니다. 아울러, 열강(청제국, 일본제국, 러시아제국 등.)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혼란을 겪다가 1910년을 기점으로 일제강점기를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이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부상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확인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의 "인식"은 일부의 시대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사 전시대를 위에 언급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의해 "재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서기 20세기의 역사인식.)은 조선왕국체제가 유지되던 서기 18세기경 "실학(實學)적 역사인식"과 차이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이 이 18세기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것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서기 20세기의 역사인식이 서기 18세기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주"에 대한 재인식과 "고조선"(왕검(단군)조선, 기자조선)의 위치를 "요동", 다시 말씀드리면 "만주"로 추정하는 역사인식이 서기 20세기에 이르러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가치의 평가"가 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단군왕검"은 서기 19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서기 19세기후반부터 "집중조명"되기 시작하였는데, 서기20세기의 역사인식 역시 이와 유사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서기 20세기초반을 전후한 한국사회의 역사인식은 "민족주의"라는 "근대시대의 유산"의 영향으로 역사를 인식하는 관점이 "유교적 관점"에서 "민족적 관점"으로 변하였으며, 여기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발생한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자주 독립" 혹은 "자긍심 고취"의 차원에서 특정 부분의 가치가 강조되는(단군, 백두산, 만주중심.)현상으로 이행하였다고 봅니다. 이런 역사인식은 광복후 서기 1990년대후반 혹은 2000년대초반까지 한국사회의 "일반적 역사인식"으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적에서는 대개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의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만주"가 강조되었고, 그 중 단군의 "출생지" 및 "도읍지" 등이 "백두산"(白頭山) 혹은 "하얼빈"(哈爾濱), 혹은 랴오허(遼河) 서쪽의 "광녕"(廣寧) 등으로 추정하는 현상으로 이어졌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것과 같이 이런 현상은 우선 "18세기의 역사인식"이 기본이 되어 여기에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의 영향이 가해진 경우로 파악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서적에서 이 시기에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견해가 이 시기 등장한 것으로 언급하였는데, 개인적인 견해로 이것은 역사인식의 가치관이 "유교적 역사인식"에서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으로 변화된 대표적 사례로 생각합니다. 유교(성리학)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조선사회에서 강조되던 "기자"(箕子)가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의 관점에서 "식민지" 및 "사대주의"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발췌부분은 이와 연관된 부분이며, 개인적인 견해로 서기 18세기경의 역사인식을 "조선중화주의"로 거시적으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요사》(遼史)등에 기록된 "동경요양부 조선고토설"의 영향을 추정하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략)
이상 살핀 것처럼 신채호, 박은식, 이상룡 등은 한결같이 '만주=기자강역설'을 부정하거나 소중화사상을 비판하였다.
(중략)
이것은 조선중화주의가 근대 민족주의로 전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학인들이나 신채호 등 민족독립 운동가들은 만주를 조선의 고토로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민족독립운동가들에게 만주는 중화주의 이데로로그로서의 기자의 강역이 아니라 민족주의 이데올로그로서의 단군의 강역이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학인들과 차이가 있었다.
(하략)

이명종, 『근대 한국인의 만주 인식』(서울:한양대학교출판부, 2018). pp.264 - 265.

또한, 개인적인 견해로, 이 시기의 역사인식이 "민족주의"를 우선시하는 인식이든, "고증과 실증"을 중시하는 실증주의적 역사인식이든, 광복 후 50년 가깝게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이 역사인식에 대한 갈등과는 별개로.) 이는 한국사회에 파급된 "한국 민족주의"(Korean nationalism)의 영향으로 "민족"을 사회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실존하는 존재"로 인식하였던 관념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