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서기 1970년대후반.)이후 중국사회의 역사인식과 동북공정의 배경.(2019.3.12.) 발췌록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정책은 서기 2002년경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적 『중국의 동북공정과 중화주의』는, 대개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역사적 배경"을 "개혁개방 이전"과 "개혁개방 이후"로 구분하고 있는데, 대개 서기 "1970년대 후반"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중국정부가 중국 내 민족문제를 인식하는 관점은, 대개 개혁개방 이전의 "사회주의적 사회, 국가, 공동제의 관점"에 의한 경우와, 이 "사회주의적 관점을 탈피한 관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 분기점은 앞에서 언급한 서기 1970년대후반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써, 여기의 "사회주의적 관점을 탈피한 관점"은 우선 서기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중국사회가 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데올로기적 가치관" 이외의 "사회적 수요"등이 역사연구에 개입한 역사인식이 확산되었음을 서적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우선 중국사회의 역사인식이, 서기 1970년대 이후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도그마"에서 이탈하면서, "사회적 수요"를 고려하는 가치관이 확산된 현상을 일련의 "사회적 충격"으로 인식한데서 나온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인식이 사회적 수요, 다시 말씀드리면, "사회여론" 혹은 "국민감정"을 고려하고 영향을 받는 현상은 물론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역사학의 기본 원칙과 거리가 있지만, 일반적인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사회에서 그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친 주체는 "이데올로기"였던 사실을 고려할 때, 중국사회의 역사인식의 "변화"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여기의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정책의 추진으로 사회가 일련의 "자본주의화"되었다는 것이 곧 중국의 정치체제가 "민주공화정"으로 변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여전히 역사연구 및 역사인식의 주체는 "중국정부"였으며, 중국정부의 "필요성"에 의해 역사인식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서적에서도 언급되어있고, 흔히 한국사회에 동북공정의 "정치적 동기"로 알려진, "중국의 변경지역 민족문제(민족동요, 이탈, 분리독립 등.)을 해결하기 위한 동기가 동북공정의 원인" 이란 견해가 이 "중국정부의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서기 1970년대이전 혹은 이후의 역사인식을 "크게 의미를 두며 분리"할 것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정책추이"의 개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역사인식에 관련한 "중국정부의 정책"은 이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에 의한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현상의 등장, "사회주의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닌 현실적 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이 기존의 사회주의이데올로기에 의한 역사인식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견해라고 생각하며, 개혁개방이후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역사인식의 비중 및 기능이 "재정립"되었다고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비중 및 기능은 추가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여기의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는 곧 중국의 민족주의로 이해할 수 있는 "중화민족주의"(Chinese Nationalism)로 이해할 수 있으며, 개인적인 견해로 이것은 개혁개방 이후 역사인식(서기 1970년대후반 이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고, 그 이전의 역사인식, 다시말씀드리면 서기 1970년대후반 이전의 중화인민공화국사회, 그 이전의 "중화민국"사회, 그 이전의 근대화과정의 "청제국"사회에서 그 위치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중국사회의 역사인식의 일부를 일정수준 점유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서기 1970년대후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의 역사인식은 A. 기존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비중이 줄어들고, "현실적인 국가정치적 상황"(정부의 정책.)이 역사인식에 개입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시스템"하에서 B. 개혁개방에 의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유입으로 "사회여론"(중국 변방의 민족문제 등 사회적 수요)가 중국정부의 정책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C. 개혁개방으로 인한 경제성장 및 사회주의이데올로기의 비중이 약화된 상황에 맞물려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적 현상(중화민족주의)이 확인되기 시작하였으며, D. 이 중화민족주의는 근대화이후 중국사회의 역사인식에 최소한 "일정부분을 점유"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런 역사인식은, E. "정치문제 및 중화민족주의"라는 색안경을 통해 역사를 인식하는 경우로써, "과거를 규명"하는 역사학의 기본을 부정하는 행위로써, 역사왜곡 및 주변국과의 충돌을 야기하고 있으며,  F. 최근들어 주변국의 역사영유권을 통째로 주장하는 팽창주의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략)
다음 최근 중국에서 대규모로 행해지는 史前時代 연구나 "東北工程"과 같은 연구는 국가권력의 정치적 요구에 복무한다는 점에서는 과거 사회주의 역사학의 흐름을 잇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민족적 자존의식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효용과 상품성이 큰 역사연구라고 할 수 있다.

곧 1996년에 시작된 "夏商周斷代工程"과 2003년 시적된 "中華文明探源工程"은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時宜適切한 연구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략)

이개석 외4인, 『중국의 동북공정과 중화주의』(서울:고구려연구재단, 2005). pp.58 -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