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그 중 고구려사(高句麗史)의 경우, 이를 고찰할 수 있는 1차적 사료는 대개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가 거의 전부이고, 종종 이규보의 《동명왕편》등에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삼국사기》의 전신의 사서로써, 통일신라(統一新羅: 676 - 896.) 혹은 고려(高麗: 918 - 1392.)초기에 편찬된 서적으로 "추정"하는 《구삼국사》(舊三國史)등이 있습니다. 그 이외의 국외사서로써, 중국의 25사 중 《구당서》, 《신당서》이전의 사서 및 《일본서기》등에 고구려와 관련된 단편적인 기록들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대개 이런 서적들을 종합하면 고구려사는 서기 5세기 이전의 기록이 상세하고 그 이후의 기록은 중국의 역대제국과의 외교관계 및 전쟁기록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대개 고구려 국내의 상황을 상세히 언급한 고구려 "초중기"의 기록이 고구려 멸망 이후 《구삼국사》로 그리고 《삼국사기》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이유로, 고구려 후기의 고구려측 인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고구려 후기의 인물로써 알려진 을지문덕(乙支文德: ? - ?.), 안시성주(安市城主: ? - ?.), 연개소문(淵蓋蘇文: ? - 666.)은 물론 고구려측의 기록을 삼국사기가 계승했을 수 있지만, 대개 중국이나 일본과의 외교 혹은 전쟁기록중에 등장하므로, 중국과 일본측의 기록의 기록을 삼국사기가 인용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이유로, 앞서 언급한 고구려 후기의 인물들의 생몰년을 비롯한 인적사항,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안시성주"의 경우, 조선(朝鮮: 1392 - 1897.)대에 이르러 "양만춘"(楊萬春 혹은 梁萬春: ? - ?.)이란 명칭으로 안시성주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이는 대개 서기 15세기 전후에 형성된 전설 혹은 《당서연의》등의 일련의 "역사소설"에 근거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상대적으로, 고구려 초중기의 인물들은 그 인물들의 관등 및 활동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고구려 동천왕(東川王: 재위 227 - 248.)대에 중국의 위제국(魏 혹은 曹魏: 220 - 265.)의 관구검(毌丘儉)과의 전쟁기록에 등장하는 밀우(密友: ?- ?.), 유유(紐由: ? - 246.)입니다. 특히 유유는 퇴각하는 고구려 동천왕을 추격하는 추격대의 지휘관에 "항복을 위장하여" 접근하여 지휘관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은 기록이 등장할 정도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 주목할 사실은 밀우와 유유가 "고구려 동천왕"과 논의 후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을지문덕이 수제국의 지휘관과 대면한 사실이 주로 언급된 것과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실전(失傳)된 기록은 대개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 재위 391 - 413.)대의 인물로 알려진 모두루(牟頭婁: ? - ?.)의 경우처럼 능묘 혹은 금석문의 발견에 의해 밝혀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향후 이런 고고학적 성과에 그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을지문덕에 대한 잡상", "동두철액의 창고", 2018.12.31. 21:49 작성, 2019.1.1. 열람.
(URL : http://eberouge.egloos.com/3582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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